부처님의 제자는 야사의 부모가 귀의하고 또한 야사의 친구 50여 명도 함께 귀의함으로써 6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펼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슴동산에서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유명한 전법선언(傳法宣言)을 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대들 또한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이제 여러 곳으로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간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한 길을 두 사람이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훌륭하게, 중간도 훌륭하게, 끝도 훌륭하게 바른
도리와 표현을 갖추어 법을 설하라......
나도 우루벨라로 가리라.
이 대목은 ‘교화의 선언’이라 일컬어지는데 부처님의 교화 자세를 잘 나타내고 있다.
부처님은 법을 나누고 전하는 일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자세가 불교의 포교에 대한 기본입장이다.
부처님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전법에 말할 수 없이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깨침을 이루고 열반에 드신 날까지 모든 생명을 위해
한 순간도 게을리하지 않고 가르침을 펼쳤다.
그 가르침의 내용이 팔만대장경이라는 엄청난 양의 가르침으로
부처님께서 전법에 얼마나 열심이셨던가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전법선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한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말라’고 당부까지 하셨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깨달음의 길에 이르게 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전법의 정신이며, 그 목적은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利益衆生)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도 훌륭하게, 중간도 훌륭하게, 끝도 훌륭하게 바른 도리와 표현을 갖추어 법을 설하라”는 가르침 역시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법을 전하는 일은 일시적이거나 즉흥적 기분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도 여법(如法)하게,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
종교적 열성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해치고 다른 종교를 훼손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목적과 방법 또한 평화적이고 여법하게 되어야 올바른 포교인 것이다.
바른 도리와 표현을 갖추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들뜬 상태에서 포교를 하게 되면, 듣는 사람의 가슴만 뜨겁게 하고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삶의 길을 하나 하나 자세하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참된 포교란 바로 이런 것이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펼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슴동산에서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유명한 전법선언(傳法宣言)을 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대들 또한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이제 여러 곳으로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간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한 길을 두 사람이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훌륭하게, 중간도 훌륭하게, 끝도 훌륭하게 바른
도리와 표현을 갖추어 법을 설하라......
나도 우루벨라로 가리라.
이 대목은 ‘교화의 선언’이라 일컬어지는데 부처님의 교화 자세를 잘 나타내고 있다.
부처님은 법을 나누고 전하는 일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자세가 불교의 포교에 대한 기본입장이다.
부처님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전법에 말할 수 없이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깨침을 이루고 열반에 드신 날까지 모든 생명을 위해
한 순간도 게을리하지 않고 가르침을 펼쳤다.
그 가르침의 내용이 팔만대장경이라는 엄청난 양의 가르침으로
부처님께서 전법에 얼마나 열심이셨던가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전법선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한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말라’고 당부까지 하셨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깨달음의 길에 이르게 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전법의 정신이며, 그 목적은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利益衆生)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도 훌륭하게, 중간도 훌륭하게, 끝도 훌륭하게 바른 도리와 표현을 갖추어 법을 설하라”는 가르침 역시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법을 전하는 일은 일시적이거나 즉흥적 기분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도 여법(如法)하게,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
종교적 열성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해치고 다른 종교를 훼손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목적과 방법 또한 평화적이고 여법하게 되어야 올바른 포교인 것이다.
바른 도리와 표현을 갖추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들뜬 상태에서 포교를 하게 되면, 듣는 사람의 가슴만 뜨겁게 하고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삶의 길을 하나 하나 자세하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참된 포교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강건기 전북대 철학과